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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 책표지 사진

■ 이타심도 유전자의 전략일 수 있다면 이타적인 행동이 진심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면, 그건 거짓일까?

누군가를 도와주는 이유가 사실은 나 자신에게 유리해서라면, 그건 이기적인 걸까? 우리는 흔히 착함과 이타심을 고귀한 성품에서 비롯된 것이라 믿는다. 아이를 위해 희생하는 부모, 팀을 위해 묵묵히 헌신하는 동료, 약한 이웃을 돌보는 사람들. 그 모든 행동이 순수한 ‘배려’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런데 『이기적 유전자』는 여기에 차갑고도 정직한 질문을 던진다. “이타심조차 유전자의 전략일 수 있다면, 그건 여전히 착한 행동일까?” 리처드 도킨스는 인간은 물론 모든 생명체의 본질이 ‘이기적 유전자’의 생존 게임 위에 있다는 전제를 제시한다. 우리가 지금껏 도덕적이라 여겼던 많은 행동들조차, 알고 보면 유전자가 자신을 다음 세대로 전달하기 위해 고안한 생존 방식일 수 있다는 것이다.

 

처음엔 불편하다. 너무 계산적인 해석이고, 사람 사이의 진심을 모욕하는 듯한 주장처럼 들린다. 하지만 이 시선을 받아들이고 나면, 전혀 다른 풍경이 보인다. ‘자신의 유전자를 더 많이, 더 안전하게 퍼뜨리는 전략’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친절도, 협력도, 심지어 희생까지도 꽤 현실적인 진화의 산물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단독 생존보다 협력이 더 유리했고, 그 협력을 지속하려면 타인을 돌보는 본능이 작동해야 했으며, 결과적으로 우리 안의 이타심은 계산되지 않은 본능처럼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본심이 아니라 본능일 수 있다. 도와주는 이유가 나도 모르게 내 유전자의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이라면, 우리는 착해서가 아니라 똑똑해서 도운 셈이 된다.


■ 계산된 친절이 덜 진실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시점에서 흥미로운 건, 인간이 이 진화적 전략을 알게 된 이후에도 여전히 이타심을 선택한다는 점이다. 타인을 향한 친절이 곧 나의 생존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고 해서, 그 친절이 무가치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이 인간이라는 종이 얼마나 정교한 생존 시스템을 갖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예를 들어, 부모가 자식을 돌보는 행동은 명백한 유전자 보호 전략이다. 그러나 그 행동이 전략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거기엔 감정이 있고, 관계가 있고, 공동체가 있다. 감정은 전략이 작동하는 통로이고, 관계는 전략을 지속하게 만드는 구조다. 그렇다면 이타심이 계산에서 비롯되었더라도, 그것이 덜 진실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무한한 경쟁과 비교 속에서 '나 하나 잘살면 된다'는 인식이 지배적인 흐름이 되었다. 타인의 아픔은 '남의 일'이고, 공동체는 점점 느슨해졌고, 협력보다 속도가 우선이 되었다. 하지만 『이기적 유전자』는 그런 흐름에서조차 인간은 결코 완전한 개인으로 진화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모든 이기적인 유전자는 결국, ‘집단 내 생존 전략’ 안에서 움직였기 때문이다. 나 혼자 살아남는 방식은 단기적으론 효율적일 수 있지만, 지속가능하지 않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아이를 키울 수 없고, 낯선 환경에서는 협업 없이는 적응이 불가능하며, 정보를 나누지 않으면 생존 기회 자체가 줄어든다. 결국 ‘착한 사람은 손해 본다’는 말은 단기적 논리일 뿐, 장기적으로는 가장 똑똑한 전략이 ‘서로를 이롭게 하는 방식’일 수 있다.


인간다움 사진

■ 우리는 유전자의 설계를 거스르는 존재일 수 있다

그렇다면 이기적 유전자가 설계한 삶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운가? 도킨스는 인간이 유전자의 꼭두각시라는 말을 반복하지만, 동시에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유전자의 명령에 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이 말은 아이러니하면서도 강렬하다. 유전자가 우리를 움직이도록 설계했지만, 인간은 그 구조를 인식하고, 이해하고, 벗어나려는 유일한 존재라는 것.

 

우리는 ‘이기적 유전자’가 아닌, ‘이기적 인간’으로 사는 법을 택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자신에게 아무 이익도 되지 않는 선택을 하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생존 확률을 떨어뜨리면서도 약자를 돕는다. 이 모든 행동은 유전자 단위의 본능을 넘어서려는 시도다.

 

진짜 인간다움은 어쩌면 바로 이 ‘저항의 능력’에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누군가를 도울 때, 그것이 전략이든 진심이든, 중요한 건 그 선택을 내가 ‘의식적으로’ 했다는 점이다. 단순한 이타심이 아닌 ‘깨어 있는 이타심’이야말로 이기적 유전자를 넘는 인간적 도약일 수 있다.


■ 따뜻한 생존은 여전히 가능한가

『이기적 유전자』는 결국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착한 행동의 진짜 동기는 무엇인가?” “나는 왜 누군가를 도우면서도 억울해하고, 누군가의 희생을 의심하게 되는가?” “나의 윤리와 본능 사이엔 어떤 간극이 존재하는가?” 이 질문들은 단순한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지금 어떤 태도로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성찰이다.

 

단지 똑똑하게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게 연결되어 살아가는 것. 유전자가 우리를 설계했을지 몰라도, 그 설계를 어떻게 쓸지는 인간의 몫이다. 착한 사람이 끝내 살아남는 이유는, 세상이 그렇게 착하게 굴기 때문이 아니라, 협력이라는 전략이 가장 오래 살아남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타심은 계산일 수 있다. 하지만 그 계산이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다면, 그건 더 이상 차가운 전략이 아니라, 따뜻한 생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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